미국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로서의 장점 중 하나는, 원하는 경우 피플 매니징은 안 하면서 계속해서 엔지니어링 테크를 탈 수 있다는 점이다 (job family를 mananger로 전향 안 하고 individual contributor로 남는 길...).
먼저, 테크 기업의 레벨 시스템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L3는 엔트리 레벨로 주니어라고 부르며,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보통 이 레벨에서 시작한다. L4는 석사/박사 받고 시작할 수 있는 레벨이다 (L3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만). L5부터는 프레시로 들어오는 경우는 못 봤고 내부에서 승진하거나 다른 회사에서 레벨업을 하면서 오는 경우가 가능하다. 이 레벨은 흔히 시니어라고 부른다. L5까지는 연차를 쌓고 충분한 업무 경험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승진이 가능하며, 이미 연봉도 충분히 만족스러우므로 L5에서 머무르면서 퇴직할 때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L6부터는 회사마다 매우 다르며, 구글은 'staff', 'senior staff', 'principal', 'distinguished' 등으로 부른다. 이 레벨에 오르려면 단순히 경력을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제로 이 레벨의 사람들은 주위에서 보기 힘들 수도 있다. 'Principal'이라는 직급은 아카데미아에서 볼 때 '정교수'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정도 레벨되면 그 분야에서 네임드가 되기도 한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L5 이상의 레벨에서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나를 위해서라도) 정리해보고 싶어서 이다. 어떻게 자신의 스킬 셋을 발전시켜야 하며, 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L6 이상의 레벨에서는 단순히 많이 잘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며, 어떠한 차별화된 요소가 필요한 듯하다.
우선, 게임에서 직업이나 클래스가 있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개인의 특성에 따라 커리어 패스를 정하게 되는데, 이 글에서는 대략 3가지로 분류해 본다.
만능형/ 해결사
그냥 다 두루 잘하는 사람. 새로운 프로젝트나 기존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로드맵을 정하고 그것들을 쪼개서 마일스톤을 만들고 주변팀들과 협력하면서 온갖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어떻게든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는 역할을 맡는 사람이다. 이들은 어떤 문제든 깊게 파고들어 주요한 성과를 이끌어내고 실현하는 높은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 기술적인 멘토로서 인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 역할에서 승진 잘하는 엔지니어들은 깊이 있게 또는 조직 전반에 걸쳐 주요한 향상이나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잘하고 각자의 장담점에 기반해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 일을 되도록 만들어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느 정도 사교적이고 연차가 쌓여 연륜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혹은 그 회사나 팀에서 경험이 많아서 내부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누구보다 잘 아는 고인 물인 경우도 많고. 이런 사람이 쭉쭉 승진도 잘하고 CTO로 가기에 가장 적합한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스페셜리스트
특정 영역에서 탑을 찍은 장인 (고인 물)으로 간주되는 엔지니어 들이다. 이들은 조직에서 소위 go-to person으로 그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이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고 상담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이렇게 조직에서 네임드가 되고 나면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다. 이런 스페셜리스트는 한 가지를 십 년 넘게 판 사람이거나 남들이 가지지 못한 도메인지식을 보유한 사람이다. 나아가 두 가지 이상의 도메인지식을 결합한 사람이라면 언터쳐블이 되기도 한다.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굳이 세계 탑일 것까지는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조직에서" 스페셜리스트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외부에서 더 스페셜리스트가 들어온다면 낭패다. 아니면, SWE 조직에서 AI 연구 경력이 있다거나 반대로 리서치 조직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특별히 잘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다. (당신이 AI Ph.D인데 연구로 자신이 없는데 코딩 실력도 만만치 않다면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코딩 머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냥 고품질의 코드를 지속적으로 뿜어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그냥 혼자 놔두면 뚝딱뚝딱 신기한 것을 마구 만들어낸다. 이들의 생산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의 코드 푸시에 대해 알람을 설정해 놓으면 당신의 알림 창이 이 사람의 액티비티로 도배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새 아이디어도 코드로 설득한다. 힘들게 디자인 문서를 만들고 팀과 회의를 거치기 보다는, 주말에 뚝딱뚝딱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팀을 설득한다. 이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가... 라며.
이런 사람은 만능형과는 다르게 팀의 방향을 설정하고 역할을 나누고 그런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을 수 있다. 본인의 만들어내는 코드 그게 얼마나 아름답게 작성되고 훌륭하게 돌아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코딩 머신이 갖추면 좋은 덕목 중 하나는 사람들로부터의 피드백을 들을 줄 아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문제를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코드를 혼자서 고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물론 알아서 다 잘하면 좋겠지만 한참 달리다보고 멈춰 봤을 때 뭔가 잔뜩 만들었지만 정작 그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게 아니게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드백을 듣고 자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그런 실수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마치며
본인이 이 중에서 어떤 타입인지 알아야 그 특화 타입을 더 강화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나는 일단 해결사는 아닌듯 하다. 스페셜리스트와 코딩머신 그 어딘가에 위치한 것 같은데.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어려운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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